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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긴 황사도 없지?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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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| 박** |
등록일 | 2000.04.17 |
잘 지냈니? 여긴 황사 때문에 혼탁한 공기에 혼탁한 하늘만 보이는구나. (요즘은 좀 나아졌지만...) 네 세상은 늘 좋은 날만 계속되겠지? 근데, 늘 좋은 환경에만 있으면, 좋은 게 좋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말야. 그러다 보면 무료함이나 지겨움도 느껴질 텐데... 그렇게 따지면, 천국이란 덴 자칫 무료할 수 있는 곳이란 거니? 아님, 그 곳에 가면, 인간적인 복잡미묘한 감정은 무디어져서 그저 행복감만을 느끼며 살게되는 건가...? 갑자기 궁금해졌다.(누나 호기심도 많지?) 요즘 네가 있는 곳- 비록 네 껍데기이지만 -엘 자주 찾아가 보지 못해 미안하구나. 근 2달 정도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. 대신 누나가 네 사진을 보며 아침, 저녁으로 너에게 얘길 걸고 있는데, 듣고 있니? 네 사진은 참 희한하다. 옆에서 보면, 입을 꽉 다문것이 약간 화난 듯한 얼굴이기도 하고, 앞에서 보면, 입꼬리가 약간 치켜올라간 것이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듯도 하고... 내 기분에 따라 네가 달리 보이는 걸까? 어제, 오늘 네 생각이 부쩍 났었다. 갑자기 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어. 누나가 주책이지...? 밤에 아주 가끔씩 우리 이런 저런 얘기도 했었잖아. 내키면 갑자기 노래방도 갔었잖아. 술은 많이 못마셔봤구나. 네가 딱 삼일만 이 곳에 다시 돌아온다면, 낮에는 여의도 벚꽃을 보러가고, 저녁이 되면, 갈비먹으러 가서 소주잔을 기울이고, 아주 깜깜해지면, 노래방을 갈거야. 그리고, 마무리로 포켓볼을 치러가야지. 너 나한테 자주 졌었지? 만회할 기회를 줘야겠지...? 참, 그러고 보니 광주에서 같이 볼링 친 적도 있었던 것 같다. 그 때 누가 이겼더라... 내기 볼링이라 필사적이었던 것 같은데... 그리고, 다음 날엔 영화를 보러가자. 물론 누나가 돈 내줄게. (구두쇠 누나를 둔 덕에 같이 뭘해도 꼭 더치페이하거나, 너에게 많이 덤탱이 씌웠었지? 나도 참 못됐지...) 그리고... 가족들과 여행을 갈까? 1박 2일로 같이 다녀오면 좋겠지? 밤에는 고스톱이나 포커를 쳐야지. 이렇게 너와 할 일이 많은데,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, 그 땐 왜 함께 못했었을까... 주어진 시간이 이리도 짧을 줄 알았더라면, 더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을까..? 더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었겠지...? 더 많은 날을 네 팔짱을 끼고서 이렇게 키크고 멋있는 애가 내 동생이라며 온 동네를 자랑스럽게 돌아다녔겠지...? 난 꿈을 참 자주 꾸는데, 그 많은 꿈 속에서, 그 많은 등장인물들 속에서 널 만나기는 정말 어렵구나. 하긴, 너도 이 사람 저 사람의 꿈 속을 찾아다니려면, 좀 바쁘겠지...? 그래도 가끔은 누나도 좀 만나주렴. 이 곳에서 널 알던 사람들이 네 존재를 잊어가는 것도 정말 안타깝지만, 그 곳에서 네가 우리 존재를 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참 슬프다. 내가 몇 십년 뒤,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그 곳엘 간다면, 넌 날 못알아볼까...? 그렇진 않겠지? 천국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하니까... 그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일지, 몇 년뒤의 내 모습일지, 아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야. 너는 아마 제작년 그대로의 모습일 것 같다. 열심히 농활을 다니고, 열심히 봉사 활동을 다니고, 열심히 술먹으러 다니고, 열심히 사랑하던 네 모습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나 보였으니까... 성진아... 누나가 이 곳에서 늘 빛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지켜보고 격려해주렴. 내 인생엔 너의 인생도 함께 들어있으니까... 감기 조심하고, 잘 지내라... 막내누나가... |